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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각

빌 게이츠가 휴가동안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

by 하온파파 2017. 9. 4.

이 책을 읽으면서 가난의 원인이 되는 문화의 다면적인 성격과 가족 역동성에 관해 새로운 통견을 갖게 됐다.

탄광마을에서 예일까지 

나는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다. 좋은 학교에 보내준 것부터 꾸준히 격려를 해준 것, 그리고 내 수많은 기벽에 인내심을 보여준 것까지 우리 부모님은 내가 가능한 모든 이점을 갖고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 줬다.

그렇기에 J.D. 밴스가 대단히 훌륭하고 또 가슴 저미는 『힐빌리의 노래』에서 묘사한 혜택 받지 못한 세상은 내가 간접적으로밖에 알지 못하는 곳이다. 밴스가 자란 곳은 애팔래치아 산맥을 끼고 있는 오하이오와 켄터키로,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고 일자리가 없으며 전당포들마저 문을 닫아버린 백인 빈곤층의 동네였다.

밴스가 조부모에게서 받은 높은 기대와 해병대에서 받은 훈련, 본인의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혼자 힘으로 예일 로스쿨에 입학했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라. 더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남자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뻔한 여자에게 버림받은 자식”의 인생이 아니라 미국 최고의 교육 기관에 다니는 사람의 인생, 어딜 가나 환영받는 인생이 한순간에 눈앞에 펼쳐졌다. 

밴스는 낯선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이방인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초창기에 경험했던 것처럼 예일에서 로펌의 채용 담당자들은 밴스에게 몰려들었다. 밴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2년 전만 해도 학부를 마치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아서 열 군데도 넘는 곳에 지원서를 보냈다가 번번이 퇴짜를 맞았었다. 예일 법대를 겨우 일 년 다녔을 뿐인데 이제 동기들과 나는 연방 대법원에서 변론을 하던 사람들에게 여섯 자리 수에 달하는 금액의 연봉을 제안 받고 있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힐빌리의 노래』는 밴스가 책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연관이 있는 ‘미국의 극심한 문화적 분단’이라는 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 준다.

나는 전부터『힐빌리의 노래』를 굉장히 읽고 싶어 했는데, 이 책이 미국 정치에 미친 영향 때문은 아니었다. 멜린다(아내)와 나는 경제 사다리의 밑바닥에 있는 미국 국민이 어떻게 해야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전문가들은 빈곤 이동이라고 부르는 현상)에 관해 수년간 공부하고 있다. 『힐빌리의 노래』가 많은 데이터를 포함한 책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난의 원인이 되는 문화의 다면적인 성격과 가족 역동성에 관해 새로운 통견을 갖게 됐다.

『힐빌리의 노래』가 단순히 주목할 만한 책이 아니라 굉장히 훌륭하기까지 한 책이라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힐빌리의 노래』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끝날까?”라는 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아버지가 없는 것과 다름없는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예일 로스쿨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독자는 처음부터 이미 알고 있다.

이 책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 데에는 밴스의 용기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밴스는 할머니에게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배신하는 짓이 가장 나쁘다”라고 일찌감치 배웠다. 밴스는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초한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그들의 문화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배신자라고 불릴 위험을 각오해야 했다.

“아주 멀쩡할 때도 나는 시한폭탄 같다. 그것도 정교한 기술 없이는 해체할 수 없는 그런 폭탄이다.... 너무나 힘들 때면 어차피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J.D. 밴스

그중에서도 밴스의 용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그가 가정을 꾸리고 난 이후에도 어릴 때 그토록 혐오했던 괴물 같은 모습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는 점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아주 멀쩡할 때도 나는 시한폭탄 같다. 그것도 정교한 기술 없이는 해체할 수 없는 그런 폭탄이다.... 너무나 힘들 때면 어차피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이 책을 이토록 재미있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등장인물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밴스의 외조부모인 할모와 할보다. 밴스가 태어나기 전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 남편의 난폭한 술주정에 결국 진저리가 난 할모는 남편에게 한 번만 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죽여 버리겠노라고 경고한다. 할보가 할모의 말을 무시하자, “빈말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할모는 차분히 차고로 가서 휘발유 통을 가져오더니 휘발유를 남편의 온몸에 붓고 불붙인 성냥을 그의 가슴팍에 떨어뜨렸다…. 기적적으로 할보는 가벼운 화상만 입은 채 그날의 위기를 넘겼다.”

남편의 몸에 불을 놓는 일이 감탄할 만한 일은 전혀 아니지만, 평소의 할모는 이치에 맞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밴스는 어릴 때 엄마의 부적절한 훈육을 피해서 할모의 집으로 도망간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일일이 셀 수조차 없다. 밴스는 할모를 이렇게 회상한다. “할모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할모는 “사랑이 넘치고 안정적인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게 행동으로 보여주며” 생의 마지막 20여년을 보냈다.

밴스의 또 다른 수호천사는 밴스보다 다섯 살 많은 이부(異父) 누나 린지다. “엄마가 집에 데리고 들어온 남자와 격하게 싸우는 동안 할모와 할보에게 도와달라는 전화를 걸려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던 사람도 린지 누나였다. 누나는 배고픈 내게 젖병을 물렸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내 기저귀를 갈아줬다.… 내 몸무게가 누나와 거의 맞먹었을 때까지도 어딜 가든 누나는 나를 데리고 다녔다.” 언젠가 할보는 린지 누나를 보고 “우리 집에 한 명뿐인 참된 어른”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밴스는 정책 전문가 행세를 하거나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면서 도시나 시골의 가난한 지역 사회에 기회를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 책을 읽고 내가 얻은 숙제는 미국의 복잡한 빈곤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든 간에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심어 줄 방법과 아이들 곁에 다정하고 상냥한 어른들을 최대한 많이 둘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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