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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각

너무 한낮의 연애

by 하온파파 2017. 7. 25.

너무 한낮의 연애

제목 그대로 더운 여름날 집과 회사를 오가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땡볕이 내리쬐는 일요일 오후 읽기를 마쳤다.

필용과 양희. 이름 만큼이나 평범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달달하다 할수도 없는 남녀의 연애 이야기가 있다.

'너무 한낮의 연애'

이들의 연애는 은밀하지도 뭔가 로맨틱하지도 않으며 감추고 싶은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낼수 밖에 없는 한낮의 빛 아래에서 하는 연애담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연애소설로 말하긴 뭔가 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필용은 대기업 영업맨으로 있다가 좌천을 당해 사내 외곽부서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세상의 경쟁에서 밀려난 자신을 겨우 추스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점심조차 동료들과 먹기를 거부하고 지금 내가 잠시 이러고 있는거라며 현실을 부정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이다.
그는 우연히 점심시간 중에 종로 맥도날드 가게엘 갔다가 그곳에서의 추억을 되새긴다. 바로 대학시절 양희와 나눴던 짧은 연애.
그들의 연애는 좀 상식적이지 않았다. 양희가 이상한건지 필용이 이상한건지...
대학시절 필용은 양희를 "나니까 너같은 애를 만나준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양희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에 필용은 발끈하며 양희에게 다시 사랑해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양희는 그러던지 말던지 하는 무표정.
이들이 다시 재회하는 공간은 바로 연극무대.
필용이 회사 점심 시간을 이용해 들어간 연극에서 바로 양희를 만난것. 양희는 그때만큼이나 이상한 복장을 하고 무표정으로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어 마주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그리고 몇번의 망설임 끝에 필용은 양희와 마주하는 관객 참여자로 무대에 선다.
필용과 양희 서로를 마주한 둘.
이상황에서 이들은 불꽃튀는 연애감정에 휩싸일까? 예상했듯이 그렇지는 않다.
그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필용과 양희는 각자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이책의 모티브가 된 연극은 바로 유명한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에서 가져왔다고 저자는 책의 끄트머리에 밝힌다.

2010 뉴욕 MoMA에서 열린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붉은색 옷). 그녀는 이렇게 하루 종일 관람객과 마주 앉아 그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Artist Is Present)’는 이 행위예술은 평론가들로부터 뉴밀레니엄을 대표하는 행위예술로 선정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필용이 어쩌면 지금의 우리 현대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며 그걸 바라지만 막상 그 존재는 우리에게 무심할 뿐.
우리는 자존감이 약해진채로 상처받고 누군가를 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 슬퍼했다가 한다.

현대인들이 심리학에 열광하는 이유도 스스로를 잃어버렸기 때문인것 같다.
바로 미디어에 투사된 조작된 삶에 빠져있고,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의 방정식에 갖혀 자신을 바라볼수 없게 된 것이다. 

이책의 모티브가 된 행위예술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도 바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사람들의 평 때문이다.

"긴 기다림 끝에 그녀 앞에 앉은 사람들은 생전 처음 만나는 한 예술가에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기도 했다. 작가는 그저 아무 말없이 이를 들어주고 눈빛으로 화답할뿐이다. 조건 없는 만남이고 응시이고 경청이다. 관객들은 역시나 자신이 원하는 시간만큼 작가와 침묵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평은 이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것 같다.
세상의 잣대로 스스로를 볼수 밖에 없었던 필용이 양희를 통해서 자신을 재발견해나가는 과정.

그래서 한낮의 연애는 더이상 감출것도 없고, 더이상 후회할것도 없는, 햇빛만큼이나 뜨겁고 후덥지근하며, 햇빛에 달구어진 여름의 공기처럼 끈적이는 연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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