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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각

미생물이 바뀌면 성격도 바뀔까요?

by 하온파파 2017. 9. 5.

대담한 쥐와 소심한 쥐, 

미생물이 바뀌면 성격도 바뀐다?!

2011년에는 불과 몇 달 사이에 여러 과학자들이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하여 미생물이 뇌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만방에 알렸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스벤 페테르손은 “무균생쥐는 미생물을 보유한 생쥐보다 덜 불안해하고 더 용감하지만, 어릴 때 미생물을 이식하면 여느 생쥐들처럼 조심성 많은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보고했다.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의 스티븐 콜린스도 우연히 비슷한 발견을 했다. 위장병학 전문가인 그는 프로바이오틱스가 무균생쥐의 소화관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연구하던 중이었다. “기술자 중 한 명이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 프로바이오틱스는 좀 이상해요. 이걸 먹으면 생쥐들이 불안해하거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쥐들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콜린스는 흔한 실험 쥐 두 품종을 갖고서 실험에 착수했는데, 그중 하나는 ‘성격이 대담한 품종’이고 다른 하나는 ‘성격이 소심한 품종’이었다. 결과는 드라마틱했다. 대담한 품종의 무균 버전(항생제를 투여하여 미생물을 제거한 버전)을 소심한 품종과 함께 사육하니 소심해졌고, 소심한 품종의 무균 버전을 대담한 품종과 함께 사육하니 대담해졌다. 다른 품종과 숙식을 함께하다보니 그들의 미생물을 받아들여 성격이 바뀐 것이다. 콜린스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두 품종의 장내 미생물이 바뀌면 성격도 바뀐다.” 

페테르손과 콜린스의 연구 결과는 인상적이었지만, 무균 버전을 사용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무균생쥐는 생리적 변화가 많아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이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일랜드 코크 대학의 존 크라이언과 테드 디낭은 정상 버전(마이크로바이옴을 제거하지 않은 생쥐)을 대상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그들은 콜린스가 연구했던 소심한 품종(정상 버전)에게 락토바실루스 람노수스(요구르트와 유제품에 흔히 사용되는 세균으로 JB-1이라 불린다)를 먹였다. 생쥐들은 이 JB-1 세균을 섭취하고 난 뒤 불안감을 보다 수월하게 극복하여 미로의 노출된 부분이나 개방된 장소의 한복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 또한 우울한 기분을 견뎌내는 데도 일가견을 보였다. 즉, 수조 속에 넣었더니 목적 없이 떠다니기보다 물장구 놀이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미로, 개방된 공간, 수조를 이용한 이러한 실험들은 정신과 약물의 효능 확인에 흔히 사용되는데, JB-1은 이들 실험에서 항불안제나 항우울제와 유사한 효과를 발휘했다. 크라이언은 말한다.  “생쥐들은 마치 저용량의 푸로작(Prozac, 항우울제)이나 바륨(Valium, 항불안제)을 복용한 것처럼 행동했어요”

JB-1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크라이언과 디낭은 생쥐의 뇌를 해부해보았다. 그 결과 JB-1은 뇌의 여러 부분들(학습, 기억,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부분)에서 GABA(흥분성 뉴런을 진정시키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에 반응하는 방법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역시 인간의 정신장애와 유사한 점이 있다. GABA에 문제가 발생하면 불안증과 우울증이 발생하며, 벤조디아제핀(benzodiazepine)이라는 항불안제는 GABA를 활성화함으로써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진은 JB-1이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추적했는데, 그들이 지목한 것은 미주신경(迷走神經)이었다. 미주신경은 길고 가지를 많이 치는 신경으로서, 뇌와 소화관 같은 내장 사이에서 신호를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미주신경은 장 - 뇌 축을 물리적으로 구현한다고 할 수 있다. 연구진이 미주신경을 절단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생쥐의 마음을 바꿨던 JB-1은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라이언과 디낭의 연구는 물론 많은 후속 연구에서도 생쥐의 마이크로바이옴을 바꿈으로써 행동과 뇌의 화학물질, 불안증, 우울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연구들 사이에는 상충되는 점도많았다. 어떤 연구는 미생물이 설치류의 불안을 감소시킨다고 보고했고, 어떤 연구는 불안을 증가시킨다고 보고했다. 어떤 연구는 미주신경이 핵심 경로라고 보고했고, 어떤 연구는 미생물이 도파민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불일치는 충분히 예상할 만하다. 마이크로바이옴과 뇌라는 복잡한 요인들이 충돌하는데 명확한 결과가 나오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오히려 순진한 것 아닐까? 

핵심적인 이슈는 ‘이런 문제가 실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실험실이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나타난 미생물의 미묘한 영향이 현실 세계에서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지금껏 ‘인간이 항생제나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한 뒤 다르게 행동하는가?’라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실시된 시험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기존의 시험들은 방법론의 문제와 애매한 결과 때문에 논란에 휩쓸려왔다. 소규모 실험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망한 것 중 하나는 커스틴 틸리시가 실시한 것으로, “미생물이 풍부한 요구르트를 하루 두 번씩 섭취한 여성들은 미생물이 함유되지 않은 유제품을 섭취한여성들에 비해 뇌의 특정 영역(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부분)의 활성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 시험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최소한 세균이 인간의 뇌 활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점을 증명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정한 임상시험이라면 세균이 인간의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기타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이미 성공의 징후를 보이고 있는 임상 시험이 몇 건 있다. 스티븐 콜린스는 최근 소규모 임상시험을 완료했는데, 한 식품 회사가 특허권을 보유한 비피도박테륨(Bifidobaterium) 균주가 과민대장증후군(IBS) 환자의 우울증 증상을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프로바이오틱스가 특정 질병에 걸린 환자의 비정상적 행동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에요”라고 그는 말한다. 크라이언과 디낭이 이끄는 임상시험은 현재 막바지에 도달한 상태다.

정신과 의사로서 우울증 환자를 위한 클리닉을 운영하는 디낭은 속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나는 동물에게 미생물을 먹여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회의를 품어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미생물의 효능을 확신합니다.” 그는 이어 다음과 같이 생각을 밝혔다. “프로바이오틱스 칵테일을 이용하여 심각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경미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항우울제나 고가의 치료법을 원하지 않는 환자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효과적인 프로바이오틱스를 권할 수 있다면 정신 건강 의학이 진일보할 수 있을 거예요.”

많은 연구를 통해, 이제 과학자들은 미생물이라는 렌즈로 인간 행동의 다른 측면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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