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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각

내 머리 속에서 과장되고 어이없게 일어나는 일들

by 하온파파 2017. 9. 7.

여러 해 전에 동료 한 사람이 우연히 나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슨 내가 고안해낸 어떤 발상 하나를 빌려 (여기에서 ‘빌린다’는 ‘훔친다’의 또 다른 표현이다) 자기 책의 제목으로 쓰겠다면서, 내가 개의치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었음에도 허락도 구하지 않고 통보하듯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개의치 않겠는가? 그 동료는 내가 쓰려고 계획하고 있던 ‘나의’ 발상을 자기 것인 양 사용하려 했는데! 나는 어떤 총회자리에서 무심코 그 아이디어를 그 사람에게 말했던 그날을 저주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교수 체면이 있지 동네 깡패처럼 울분을 터트리며 고함을 지르거나 주먹다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분노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하는 행동을 했다. 그것은 바로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나의 남편 앤서니는 외과의사인데, 내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미안, 지금 전화 끊어야 돼. 지금 나 수술실에 있어. 응급수술 들어가야 해.”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두 번째로 뒤통수를 맞은 셈이었다. 그것도 내 편이라 믿은 남편에게서!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아내인 나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논리적으로 분명 맞긴 하지만, 그런 사실조차도 치밀어 오르는 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자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토록 냉정하게 외면하다니! 이런 생각은 재빠르게 ‘남편은 지금까지 진정으로 나를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로 뻗어갔다. 이렇게 나의 분노는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남편이 내게 전화를 하더라도 받지 않겠다는 앙심이 분노와 함께 부풀어 올랐다. 이렇게 나는 감정의 덫에 걸린 것이다. 

그렇다. 그 상황에서는 문제의 그 음성 메시지를 보냈던 동료에게 그의 선택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단호하고도 차분하게 표현한 다음,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어야 옳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이틀 동안 속을 부글부글 끓이면서 아무 죄도 없는 남편을 냉랭하게 대했다. 남편이 ‘그때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신은 어떠한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이런 터무니없고 황당한 이야기들 때문에 우리는 갈등에 휩싸이고 시간을 낭비하며, 자기 주변 상황까지 악화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 그것은 바로 이런 일들로 인해 자기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 자기가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세상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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